가격추세는 왜 생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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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는 분명히 ‘추세’가 존재한다. 여기서 추세란 (비교적 짧은)일정기간 동안 한 방향으로의 큰 움직임을 의미한다. 기간이 몇 분,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이건 그 시간스케일에 맞는 추세를 관찰 할 수 있다. 도대체 추세는 왜 생기는 것인가? 추세가 생기는 메커니즘을 알아야 추세에 우리의 자본을 맡길 수 있다.

혹자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큰 상승추세를 예로 들면, 한 방향으로의 급격한 움직임이 나타나려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투자자들의 사고 싶어하는 욕구가 팔고 싶어하는 욕구보다 훨씬 커져야한다. 그런데 모래알처럼 흩어진 투자자 개인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이러한 큰 수요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누군가 엄청난 돈을 투입해 큰 수요를 발생시켜야 하고, 이는 곧 추세를 형성하는 동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으로 모든 추세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규모가 작은 중소형주에서는 세력이라는 집단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추세는 이러한 중소형주만이 아닌 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대형주, 그리고 KOSPI, S&P500과 같은 인덱스를 추종하는 선물옵션 거래에서도 나타난다. 사실 거의 모든 투자자산들의 가격변동에서 추세가 관찰된다. 이렇게 전세계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그런 엄청난 거래대금을 모두 이겨내고 추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개인이나 회사가 존재할까? 내 생각엔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이 주장에는 무시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 존재한다. 투자자 개인들의 생각이 찰나의 순간에도 항상 다를 수 밖에 없는가? 설사 그렇다고 쳐도, 그것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짧은 순간에도(심지어 초 단위의) 시장에 추세가 형성된다는 것은 관찰로부터 나온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이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행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봐야 한다. 그것도 추세가 형성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하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현재 극도로 발전된 어떤 과학기술을 써서도 불가능하다. 앞으로도 가능하게 될 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 이 상태에서 더 나아가 한 두 명의 거대한 힘을 가진 세력이 존재하여 이들이 가격을 올린다고 믿는 것은 분명한 논리적 비약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원인이 추세를 만드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신만이 알겠지만, 무지한 인간으로서 현재 그나마 의지해 볼 수 있는 것은 비평형 복잡계 과학에서의 발견이다.

비평형 복잡계 과학은 주로 평형적이지 않은 (물리적으로 말하면 외력의 합이 0이 아닌) 집단을 다루는 학문이다. 여러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계(System)을 다루되, 이 계를 기준으로 보았을때 외부에서 여러가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0이 아닌 상태를 다룬다는 것이다.

단순한 예로 쌀더미 실험을 들 수 있다.
쌀더미는 쌀알들이 서로 몰려있는 하나의 계(System) 혹은 네트워크(Network)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누군가 쌀알을 하나씩 계속 떨어뜨린다. 쌀알들은 점차 더 가파른 경사를 만들며 산처럼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 쌀사태가 일어난다. 마치 가끔 산사태가 일어나듯 말이다. 쌀 알갱이들을 하나씩 떨어뜨리는 것은 쌀더미 계(System)를 변화시키게 되는 동인이 된다. 하지만, 쌀사태는 쌀알이 떨어질때마다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어느 순간에 한 번씩 일어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발견된다. 가끔 일어나는 이 쌀사태에 동원된 쌀알의 수를 하나하나 세어 보고, 그 분포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power-law-number-output-of-the-sandpile-model

figure 1) 쌀사태 멱함수 분포

그래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쌀알이 많이 동원된 큰 쌀사태는 작은 쌀사태보다 적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정한 비율로 줄어들면서 말이다.

“큰 쌀사태가 작은 쌀사태보다 적게 일어나는게 당연하지 ! 그게 뭐 어떻다고.”

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근데 만약 이렇게 따진다면 나는 “왜 그게 당연한 건지 설명해주세요 !”라고 요구할 것이다. 왜 당연한지에 대한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쌀사태의 규모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적게 일어난다는 것은 그리 당연해 보이지는 않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 많은 복잡계 물리학자들이 인생을 걸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에서 이러한 멱함수 분포가 나타난다. 지진, 산불, 도시의 규모, 역사적 전쟁의 규모, 과학의 패러다임 변환 과정까지… 정말 상상하지 못할 많은 부분에서 이런 멱함수 분포의 보편성이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는가?

추세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멱함수 분포로 넘어간 것은, 둘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가격 변동성이 이러한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63년 망델브로가 보인 면화 가격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 진 스탠리의 S&P 500 연구에서도 이런 사실이 관찰되었다. 실제 시장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시장을 단순화시켜 모사한 게임에서도 이러한 멱함수 분포가 나타남을 확인하였는데, 1999년 본대학의 경제학자 토머스 룩스와 칼리아리대학의 전기공학자 미셰 마르셰시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그것이다. (content 1)

비평형 복잡계 과학에서 말하는 ‘격변’의 개념은 우리에게 시장의 ‘추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일단 비평형 복잡계는 이름에서 말해주듯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쌀알을 한 알씩 떨어뜨리는)가 있어야 한다. 한편, 이 계(System)자체가 ‘임계상태’라는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임계 상태는 언제든 격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이해된다. 임계상태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불규칙성과 규칙성이 공존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적절한 비유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불규칙하게 나열된 도미노집단과 규칙적으로 나열된 도미노 집단이 섞여있는 상태(?) 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때때로 작은 원인이 도미노 한 개를 넘어뜨려 그로 인하여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는… (물론 단순히 도미노 한 개만 그냥 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임계상태에 있는 계는 작은 원인으로도 언제든 충격적인 크기의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임계상태에서 나타나는 일들의 크기 분포를 보면 ‘멱함수 분포’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멱함수 분포 = 임계상태’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적인 연구가 덜 되었다고 본다. 단지, 멱함수 분포를 보이므로 임계상태에 있을 거라고 추정해볼 뿐이다. 멱함수 법칙과 임계상태가 나타내는 함의는 큰 사건이 작은 사건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초기의 원인은 일상적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큰 쌀사태이건 작은 쌀사태이건 초기의 원인은 쌀알을 하나씩 떨어뜨린 것 뿐이다. 동일한 논리로 주식가격의 변동성이 멱함수 분포를 보인다는 것을 통해 ‘주식시장이 임계상태에 있을 것이다’라고 추정해 보는 것이다. 또한 임계상태의 시장에서도 크고 작은 추세가 일상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비평형 복잡계 과학의 추론에는 중요한 가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투자자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시장의 개별 투자자들은 서로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한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투자자 개인을 완전히 합리적이며,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는 존재로 가정하는데, 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현실 시장을 해석하는 차이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크기로 개별 투자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한 방식과 크기에 따라 멱함수 분포가 존속할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할 지도 모른다. 아직 무엇하나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알고 있는 정보로 추정해 볼 뿐이다.

비평형 복잡계 과학에 관한 책들을 보면서, 시장의 추세 형성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장의 가격변동이 멱함수 분포를 보인다
시장은 비평형 복잡계에서 말하는 임계상태에 있다
작은 원인이 임계상태의 계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작고 일상적인 원인을 통해서도 커다란 추세(상승 혹은 하락)가 형성 될 수 있다.

이런 추론이 옳은지 그른지는 좀 더 자세한 연구결과들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겠다. 기존의 경제학적 추론보다는 정확한 현실해석이 되길 바란다.

Reference)

Content 1) 우발과 패턴 236p
Figure 1) Avalanche in States; Combination of Sandpile and Cellular Automata for Generate Random Numbers - Scientific Figure on ResearchGate. Available from: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Power-law-number-output-of-the-sandpile-model_fig2_260318635 [accessed 6 J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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